
언젠가부터 사는 게 재미없다고 느껴졌다. 아니면 원래도 재미없었는데 그걸 요즘에야 인정하게 된 건지도 모르겠지만.
요즘 들어서는 범죄 다큐멘터리를 볼 때조차도 이런 궁금증만 든다. 운동선수가 살인을 했거나 살해를 당했다는 내용에서도 저기 나오는 운동선수가 점수를 내기 위해, 순위권에 들기 위해, 메달을 따기 위해 노력했던 시간들을 지나 실제로 이뤄냈을 때의 기분은 어떤것이었을까 싶은 좀 뜬금없는 궁금증 말이다. 거기에 나오는 형사나 경찰을 봐도 마찬가지다. 처음 경찰이 되었을 때, 그리고 범죄자를 잡았을 때 뿌듯했겠지 싶고. 과학 다큐멘터리를 보다가도 수십 년 이어온 연구의 끝에서 새로운 발견을 하게 된 과학자들의 순수한 기쁨을 보면 나는 저런 종류의 행복은 평생 모르겠지 이런 생각만 든다는 거다. 뭔가를 이뤄냈다는 뿌듯함과 거기에서 오는 가장 단순하고 직접적인 행복감 같은 거 말이다.
그래서 드디어 깨닫게 됐다. 왜이렇게 삶이 재미없고 뭘 해도 별로 느껴지는 게 없었는지. 성취감의 부재였다. 성취감이 느껴지지 않는다. 딱히 성취감을 느낄 수 있는 뭐 대단한 짓거리도 한 적이 없긴 하지만.
나는 뭘 이루려고, 아니 무엇을 목표로 살던 사람이었더라? 그것도 모르겠다. 나 왜 살지?
살면서 지독하게 바라던 목표를 이루어냈다던가 '해냈다!!!' 해방감에 절어 소리 지를 만큼 시원한 성취감을 느껴본 적이 있었나. 단 한 번도 없었던 것 같다. 원하던 성적 따내기, 영어 점수, 영국, 대학, 처음 그림으로 돈 벌었을 때, 출판했을 때, 꾸준하게 자잘한 목표들과 열망 따위는 있었지만 그것에 도달했을 때 나의 태도는 성취감이라기보다는 어서 그 너머에 있는 것에 또 가야 한다는 압박감이라던가 집착밖에 없었다. 어렸을 때는 진짜로 아득바득 살았었는데. 우리 집안 환경을 바꿀 만큼의 큰돈을 벌 수는 없었다. 그냥 그게 모든 결과였고 좌절이었다. 이제 와서 보니 내가 했던 모든 게 딱히 쓸모없어 보이던 이유가 그거였던가.
내가 이룬 것들이라고 하기도 뭐 하지만 이뤄낸 것들 대부분은 어중간한 것들이 대부분이기도 했다. 그래서 내가 이뤄야 할 것은 저 멀리 더 큰 곳에 있다는 생각이 항상 있었던 것 같다. '이걸로는 부족해' 내가 여태껏 해온 모든 것들이 그저 저 너머의 어딘가로 가기 위한 수단일 뿐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이뤄낸 적이 없었고, 만족도 성취도 아무것도 가져보지 못했다. 어떤 목표에 도달했을 땐 그냥 당연한 것을, 해야 했던 것을 한 것이라 여겨질 뿐이었고, 해냈다 하더라도 언제나 내가 생각했던 도달치에 못 미치는 정도였다. 그래서 하긴 했지만 어째 실망스러운 기분만 평생 누리고 살았던 것이다.
중간고사를 끝내면 기말고사가 있고 그다음 학년이 있고 그 후에 이뤄내야 할 것들이 항상 기다리고 있었으니까. 뭘 해내긴 무슨, 그냥 끝없이 계속 가야만 하는데. 그리고 어린 시절 꿈같은 것들도 객관적이라기보단 항상 주관적이었던 것들이라 어디 기준을 잴 수도 없는 것들이 대부분이기도 했다. 여전히 그렇기도 하고. 내 삶은 항상 뭉뚱그려있고 너무나도 주관적인 것들에만 발을 담고 있어서 아무것도 수치화가 되지 않는다. 예술 중에서도 순수미술만큼 가장 취향 타고 주관적인 평가에 휘둘리는 것도 없으니까. 사실 뭐 어쩌라는 건지도 모르겠는 평가에 관심도 없고. 이제는 정말로 모르겠다. 내가 뭘 위해 살아왔던 거고 뭘 하려는 건지. 돈을 왕창 벌어서 아빠가 없는 나라에서 평생 살기, 아빠에게서 멀리멀리 떨어져 살기 이런 게 삶의 원동력이었는데. 지금 다시 똑같은 상황에 돌아오게 되니 엿같아서 그런가. 자꾸만 포기를 하게 된다. 이렇게 살란가보다 싶어서.
그래서 객관적인 목표치와 객관적인 결과가 있는 무언가가 부럽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실적 같은 것을 목표화 해서 가질 수 있고 객관적인 결과로 이뤄 냈구나 아니면 실패했구나 판단할 수 있는 것들. 그러면 해냈다!라는 성취감을 느껴볼 수 있을 것 같아서. 근데 내가 지금 맨부커상을 받게 된다 해도 (갑자기 왜 맨부커상이 떠올랐는지는 모르겠지만) 뭔가를 이루어 냈다는 기분이 안 들 것 같았다. 당연히 이루려고 한 적도 없으니까 - 지만 상상으로 말이다. 노벨 평화상을 준다고 해도, 전 세계 지구 통일 온 나라 화합을 내가 이뤄내게 된 다고 하더라도 성취감이 느껴질 것 같지 않았다. 무엇을 해야 내가 성취감을 느낄 수 있을지 나도 모르겠다.
매일 다이어리에 할 일을 적는데 청소하기, 그림 열심히 그리기 이딴 식으로 적어놓을 뿐이다. 그러면 청소도 하고 그림도 그리긴 하는데 하긴 했지만 청소를 딱히 본격적으로 혹은 멀끔하게 한 것 같지는 않아서 세모를 치고, 더 열심히 할 수 있었는데 생각보다 게을러 빠지게 그린 것 같아서 그림 열심히 그리기에는 엑스를 치고 하루가 마무리된다. 그래서 더 세부적으로 혹은 객관적인 평가를 내릴 수 있게 바꿔서 청소기 돌리기, 그림 특정 부분 완성하기로 바꾸고 체크 표시를 해보는데 그냥 그게 끝이다. 어쩌라고다.
그냥 다 재미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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