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Life Overtakes Me'
삶이 나를 앞질러간다 정도로 받아들였는데 와챠피디아에 보니 누군가 '삶이 나를 두고 흘러가요' 라고 써놓은 것을 봤다. 그 표현이 더 와닿는 기분이다. 나는 멈춰있는데 그런 나를 두고 내 삶이 흘러가고 있다니.
다큐멘터리의 한국어 제목이기도 한 '체념증후군(Resignation Syndrome)'은 주로 스웨덴에 거주하는 난민 아동에게서 보고되었다고 한다. 증상으로는 아이들이 점차 반응을 잃고, 말을 하지 않고, 움직이지 않다가 결국엔 외부 자극에 어떠한 반응도 하지 않는 잠자는 숲속의 공주와 같은 상태가 된다는 것이다. 평온한 아이들의 모습을 보면 꼭 깊은 단잠을 자고 있는 것처럼만 보인다. 근데 그 상태로 6개월, 18개월 이상을 보낸 아이들이 있다는 것이다.
이 다큐멘터리 자체는 이 증후군에 대한 정보나 역사 혹은 주변 상황에 대해 딱히 그렇다 할 깊은 정보를 담고 있는 건 아니었는데 흥미를 끌기엔 충분했다. 세상에 이런 현상도 있구나 싶어서.

체념 증후군에 빠진 아이들에게서 공통적으로 확인 된 부분은 그들이 대부분 전쟁이나 그러한 상황에서 박해를 피해 온 가족에 속해있다는 것이었다. 게다가 스웨덴에서 오랜 시간 체류 허가를 기다리는 불안한 상황에 놓여있었다는 것. 얼핏 보기에는 평화로운 동네에서 평범한 삶을 이어가는 가족들처럼 보였지만 다시 떠나야 할지 모른다는 불확실성 가운데 있는 상태였던 것이다.
이 증후군의 원인이나 상태는 현재까지 명확하게 밝혀진 게 없다고 하는데 연구와 보고에서 반복적으로 언급되는 요소는 과거의 트라우마와 장기간 지속되는 불확실환 생활조건, 그리고 상황을 바꿀 수 없다는 무기력함. 그러니 이 모든 요소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했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의학적으로 이것을 하나의 명확한 질병으로 규정할 수 있는지, 혹은 심리적 반응으로 이해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아직까지도 의견이 나뉘고 있다고 했다. 근데 정체불명이나 원인불명이라기엔 너무나도 정확한 원인과 결과가 나와있는 거 아닌가 싶긴 했지만 말이다.
불안과 우울에서 시작해 외부와의 상호작용이 끊기고 마지막 단계에 이르면 아이는 침대에 누운 채 모든 반응을 상실하게 된다. 겉으로 보기에는 혼수상태와 유사하지만 명확한 신경학적 손상이 확인된 것도 아니라했다. 검진에서도 특별한 이상은 없다고 나오고. 그렇게 된 아이들은 스스로 음식을 먹을 수도 없어 관을 통해 영양을 공급받게 된다.

회복과정 또한 일정한 패턴을 따르지 않는다고 하는데, 일부 아이들은 환경이 안정되거나 체류 허가가 승인된 후 점차 반응을 회복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고 힌디. 그러나 모든 사례가 같은 과정을 거치는 것은 아니며 왜 어떤 아이는 회복이 되고 어떤 아이는 그렇지 않은지 명확한 설명도 없다. 비슷한 조건에 놓여있는 다른 국가에서는 거의 보고되지 않고, 오직 스웨덴. 왜 이 현상은 특정 지역에서 집중적으로 나타나는 것일까? 참 신기하다.
갑자기 체념증후군에 대해서 조금 더 알아보고 싶은 마음이 들어 몇 가지 검색들을 더 해봤다. 그렇다고 바닥까지 싹싹 긁어 팔 정도의 열정은 아니었고 적당히 정도.

참고 글
미국 국립 의학 도서관: https://pmc.ncbi.nlm.nih.gov/articles/PMC12670723/
최근 들어 만화만 읽다 보니까 눈에 글이 안 들어오고, 글자를 보고는 있는데 머릿속으로 이해되어서 들어오는 건 하나도 없어서 한참을 읽었네... 다른 기사들도 조금 훑어보긴 했는데 비슷비슷한 내용만 적어놔서 가디언 링크 하나만 추가했다. 근데 기사는 다큐에 나온 내용이랑 별반 다를 게 없고 NLM (National Library of Medicine)에 올라온 글을 보면 엄청난 정리가 되어있다. 솔직히 이런 증후군의 존재가 흥미로웠다 정도가 끝이었는데 영어공부하는 셈 치고 오기로 읽었다. 아휴.
어쩌면 심리적 요인으로 발병하는 병들이 이해가 기도 하고 그래서 뭘까 조금만 더 알아보고 싶었던 것 같기도 하고. 불안장애랑 건강염려증을 미친년 맥스로 찍었을 때, 건강검진을 해도 병은 없다는데 매일매일 몸 이곳저곳이 진짜로 아팠을 때 심리적인 게 얼마나 큰 영향을 끼치는지 깨달아서 잘 알고 있으니까 후하. 그래서 그냥 이런 것들을 보면 궁금해진다.

Body is the mouthpiece of the mind is evident in out posture 몸이 마음의 대변자라는 것. 마음의 질병이 신체적 장애로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을 볼 때. 어린아이들이 그 속을 얼마나 앓았으면 완전한 무반응이라는 결과에 도달하게 되었던 걸까 싶기도 했다.
하여튼 NLM이나 더 가디언지에서 체념증후군에 대해 공통적으로 언급하는 것은 '사회가 만들어낸 질병'이라는 것이었다.


질병은 생물학적 요인뿐 아니라 사회적·문화적 요인을 함께 고려해야 하는데, 기존 의학에서의 질병은 몸에 이상 (생물학적 정상 상태에서 벗어난 것) 이 있으며 객관적으로 측정이나 평가가 가능해야 하며 사회나 문화와는 상관없이 자연적으로 발생하는 것이라 봤다. 근데 어떤 질병들은 특정 시대나 특정 사회에서만 나타나기도 한다는 것이다. 게다가 시간이 지나면 사라지기도 하고. 그래서 이게 진짜 순수한 생물학적 질병이 맞는 것인지의 의문도 생길 수 있지만.

근데 확실하게 질병은 사회가 만들어내는 측면도 있다는 것이었다. 의사가 이름을 붙여 진단하고 사회가 그런 질병이 있구나 인정하고 언론이 퍼트리고 보험, 복지 시스템이 개입하면 그 '질병'은 실체를 가진 확실한 존재가 되는 거니까. 이건 마치 협상과도 같아서 모든 사람들이 이게 병이다 혹은 병이 아니 다를 함께 만들어간다는 건데, 그래서 같은 증상도 사회마다 다르게 해석될 때가 있고 질병이 사라지기도, 늘어나기도 한다는 거다. 그러니까 '증상'은 존재하지만 '질병'은 고정된 실체라기보다, 증상 위에 사회가 붙인 “해석”이라는 것. 뭔가 이런 관점으로 생각해 본 적 없었는데 이렇게 보니까 흥미롭다. 그래 우리가 부르는 모든 병들은 누군가 붙인 네임태그들이었지 새삼 깨닫게 되었던.
그래서 진짜 병인데 상상이다/연기다로 치부되어 무시될 수도 있고, 반대로는 '넌 이 병에 걸렸어'라고 진단을 내려버리는 순간 그 사람이 진단 내려진 병의 정체성에 맞게 자기도 모르게 행동하게 될 수도 있다는 점도 있다. 그러니까 라벨이 사람을 병들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하여튼 질병이라 부르는 것은 단순한 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 문화 제도 뭐 이런 것들의 영향을 받는 복합적인 현상이라는 것. 그래서 체념증후군이라는 것도 왜 스웨덴에서만 나타날까? -> 단순한 생물학정 병이라면 전 세계에서 보고되어야하는데 -> 그런데 특정 사회에서만 나타난다 - > 사회적 조건이 만들어낸 병이다 - > 병은 발견되는 게 아니라 때로는 만들어지기도 한다는 것이다 이런 결과에 도달하는 것 같다.

하여튼 이런 구성주의적 (constructivist view) 접근이 사회적 영향을 무시할 수 없는 질병분류에 도움이 되지만 주류 의학에서는 이 관점을 충분히 활용하지 않는다고 했다. DSM-5에서 모든 정신질환은 문화 영향을 받는다고 인정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DSM-5 가 뭘까 뭔 MI6 이런 거처럼 기관 같은 건가 해서 봤더니 정신질환을 진단하는 공식 기준서 같은 거란다. 난생처음 들어봤다. 우울증이나 불안장애 ADHD 등 다양한 정신질환의 진단 기준이 '이 증상이 몇 주 이상 지속되면 -> 우울증이다' 이런 식으로 구체적인 조건으로 제시되어있다고 한다. 뭔가 내용 궁금하다.. 다음에 제대로 확인해봐야지) 그러나 이 논문에서는 DMS-5가 실제 진단 체계는 객관적 기준 중심으로 사회적 원인을 충분이 반영하지 않는다고 지적한다. 근데 내가 여기에 뭔 말을 붙일 수도 없는 게 나는 이런 곳에 전문성도 없고 뭔가 의문을 가져본 적도 없었어서 ,, 뭘 알아야 의문을 가지든 말든 하니까 ^,,,..,^ NLM에 올라온 글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더라... 정도일 뿐이다.

하여튼 이제 더 읽기도 귀찮고 눈 빠질 것 같아서 대충 보면 왜 콕 찝어 '스웨덴'에서 이 증상이 발현되었을까는 완벽하게 확정된 답은 당연히 없었다. 난 그게 좀 궁금했던 건데. 근데 가능성으로 본다면 스웨덴은 과거에 난민 수용을 많이 했는데 체류 결정이 오래 걸렸던 탓에 난민 가족에게는 그 기간 거절과 불확실성의 상태가 길게 지속되었다. 그리고 증후군에 걸린 아이들을 보면 망명 거절이나 기다리던 시기에 상태가 악화되었고, 위에도 언급한 것 같이 체류가 허가되자 회복되는 경우가 있었고. 그리고 비슷한 지역에서 온 난민 아동에게 집중된 걸 보면 그들의 문화적 특성이나 구성 같은 것도 영향이 있었겠지. 어쩌면 체념 증후군 현상이 알려지며 같은 상황에 놓여있던 아이들이 비슷한 방식으로 반응하게 된 가능성도 있지 않았을까 근데 의도적이 아니라 무의식 속에서 표현 방식이 공유된다는 의미로 말이다.
하여튼 이런 사회적 환경과 연결되어 특정 증후군이 발생할 수도 있다는 게 신기할 뿐이었다. 그리고 아이들이 얼마나 심리적으로 힘들었으면 눈을 감고 외부와의 반응을 끊는 결과를 맞이했을까 싶어서 마음 아프기도 하고. 가족 전체가 불안 속에 있는데 부모의 무력이나 우울감을 아이가 그대로 받다가 도저히 견딜 수 없는 상태가 된 것이겠지. 논문에서는 학습된 무력감과 유사한 패턴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난 항상 아이들의 우울과 관련된 내용을 접하면 요상하게도 마음이 더 쓰게된다. 내가 상관할 일도, 어떻게 해줄 수 있는 것도 아닌데 어쩔 때는 지구 반대편에 있는 누군가의 이야기까지도 지독하게 신경을 쓰게 될 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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